photo & story2017.02.11 15:52


'이곳'으로 이사 온지도 벌써 12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온날, 2005년 4월 어느 주말이었다. 이 집을 소개해준 지인과 맨하튼에서 만나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몇거장을 남겨놓은 앞에서 운행이 중단되 내려 야외로 다니는 지하철 레일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레일위에서 유리같은게 떨어져 우리 바로 앞에서 깨졌다...!!!! 주변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더 놀라웠다. 

20~30분을 걸어 도착한 건물 양옆으로는 이발소와 자동차 정비소가 있었고, 오래되 보이는 남미 레스토랑이 그 옆에 자리한 조그만 아파트. "뉴욕=맨하튼" 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당시, 달라도 너무나 달랐던 동네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넓고 가격도 맨하튼과는 비교할수 없이 저렴해 잠깐의 고민후 집주인을 만나 1년 계약을 했다.   

이민가방 두개만 들고 이사를 왔던 그때. 1년만 여기서 살고 다시 맨하튼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집안을 꾸미는건 고사하고, 모든 가구와 식기조차 6년 가까이 이집에 살았던 사람이 썼던 것을 그대로 쓰며 지냈다. 처음 부모님이 '이곳'에 방문했을때 늦은밤 집앞 지하철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본 후 어머님의 실망섞인 한숨과, 새벽 창문너머로 들렸던 총소리에 부모님이 걱정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대로 된 컵도 없어서 부모님과 밥그릇에 와인을 따라 마셨던 기억도 난다 ㅎㅎ 

그러는 사이 1년이 지나고, 대학을 들어가고. 

맨하튼으로 이사를 하기엔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때마침 사진가인 지인이 집에 놀러와 창고로 쓰이는 창문없는 방을 암실로 꾸미자는 제안을 했다. 그분이 한국에서 공수한 확대기를 가져와 설치하고, 전에 있던 쇼파를 분리해 암실 책상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암실은 지금, 바로 어제도 프린트를 했던, 내가 제일 정이가는 공간이 되었다. 

두번의 룸메이트와 이 집에서 2009년까지 함께 살며, 처음 여기를 소개해준 아티스트 지인과 작업실을 공동으로 쓰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4월 작업실 건물에서의 끔찍한 사고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이 쫒겨나게 되었고, 어쩔수 없이 집에서 작업과 생활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인해 그때부턴 혼자 지내왔다. (스튜디오에 관한 포스팅은 이글 이후에 하겠다)

뉴욕의 급격한 고급주택화와 지역발전(Gentrification)의 소용돌이의 중심이 이 동네로 옮겨왔다. 뉴욕을 넘어 그 넓은 미국 땅덩어리안에서 가장 급격한 발전을 하는곳이 '이곳' 이라는 기사도 봤다. 그것도 그럴것이 5~6년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백인을 보면 속으로 '쟨 길을 잃었나?' 라는 장난섞인 생각을 했었으니 말이다. 

'이곳'에 산다고 얘기하면 미간부터 찡그린 후 걱정스런 억양으로 어떻게 그곳에 사냐고 했던 뉴요커들이 이젠 멋진동네라며, 수많은 예술가들과 젊음으로 가득한 '이곳'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고있다. 

절대 생길수 없다고 믿었던 스타벅스가 몇년전 집앞에 오픈할때만 해도 뭐 대기업이니 그럴수 있다고 넘겼는데, 그 이후로 근사한 커피숍, 레스토랑, 바, 클럽들이 서로 경쟁하듯 오픈을 하며 가격도 맨하튼과 견주어 절대로 싸지 않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이미 탈락한 몇곳은 치솟는 자릿세를 감당못해서인지 문을 닫아 다시 들리려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2011년 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2014년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이곳', 이 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면서 집안 벽색깔도 바꾸고 가구, 집기도 조금씩 바꿔가며 지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집안의 변화보다 몇십배나 급격한 집밖의 변화를 느끼며 산다. 

이사왔을때부터 있었던 옆 정비소는 그대로 있지만 이발소는 미용실/네일샾으로 바뀌고, 그옆에 있던 남미 레스토랑은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새로 오픈했다. 

저녁마다, 주말마다 동네 구석구석에서 열리는 파티. 미국 팝음악보단 라틴 음악, 영어보단 스페니쉬가 더 자연스럽게 들렸던 '이곳'. 아직까진 주말에 간간히 파티를 열지만 예전처럼 시끌벅적하게, 밤늦게까지 파티를 할수없는 현실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타까울수 밖에 없다. 

처음 이사왔을때부터 있던 동네주민들과 항상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골목 모퉁이의 작은 슈퍼에선 할인도 해주고, 돈이 모자르면 다음에 가져오라고 하는 훈훈한 정이 깃든 '이곳'. 이제는 마음 한구석의 불안감을 가지며 다들 살고 있는듯 하다. '집주인이 월세를 왕창 올리면 어쩌지?' '건물주인이 여기를 대기업에 팔고 쫒아내면 어쩌지?' 등등. 실제로 주변에서 너무 많이,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뉴욕의 집세는 법적으로 1년마다 최대 5%정도까지만 올릴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도 예전 얘기인듯 하다. 하지만 난 처음 1년 계약 후 한번도 재계약없이 집주인과 마주칠때 몇년에 한번씩 조금씩 대화로 집값을 올리는 나름 훈훈?한 사이가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말에 집주인이 갑자기 전화를 해 "이동네 상황을 너도 알거고, 집세, 물값등등이 폭등했으니 집값을 좀더 올려야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참고로 뉴욕시의 물세는 건물주가 낸다) 10%가 조금 넘는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이동네 시세와 비교할때 아직까지는 가격이 싸고, 오래되고 낡은 집이지만 이제는 애정을 가지고 와이프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에 남기로 결정한건 어쩌면 당연하다. 


작년 9월 즈음으로 기억된다. 집앞 지하철역 앞의 도로가 갑자기 광장?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들을 놓아 사람들이 앉아 음식과 커피와 햇볕을 즐기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에 내눈을 의심했다. 


Myrtle-Wyckoff Ave Intersection, Bushwick, NY, 2015

2015년 어느 겨울. 광장으로 바뀌기전 이 길. 차들이 이곳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Myrtle-Wyckoff Plaza, Bushwick, NY, 2016 


이후 한달이 조금 넘은 작년 11월 말 그 광장에 방송국 카메라들과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뮤지션들이 캐롤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 광장의 정식명칭은 Myrtle-Wyckoff Plaza. 복잡한 이곳은 사거리도 모자라 육거리중 한 도로였다. 특히나 이 거리에서 자동차사고로 많은사람들이 생명을 잃거나 다쳤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수 있었고, 그래서 플라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식을 이곳에서 잃은 부모들도 나와 얘기도 하고, 뉴욕 교통국, 여러단체에서 이 플라자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은 불편해 할수 있겠지만 복잡했던 도로 한가운데에 앉아 마시는 커피와 잠깐의 휴식은 '이곳'을 더욱더 떠나기 싫은 이유하나를 추가하게 만들어 줬다.  

Myrtle-Wyckoff Plaza 기사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나의 뉴욕집 in association with Myrtle-Wyckoff Plaza, Bushwick,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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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so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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